국내여행

춘천('07.2.1)

산길바람 2009. 10. 22. 18:17

 

여행지 : 춘천(신포, 강촌, 남이섬)

기   간 : 2007. 1. 27~1.28

 

아보 3차모임으로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일박이일간 보냈다.

당초 일기예보와는 달리 눈도 오지 않고 겨울날씨 답지않게 날씨가 포근했다. 

도시가  서울처럼 복잡하지 않아 좋았고, 산과 호수가 많아 공기도 쾌적하다.

 

사북(신포) 빙어낙시터에서 썰매타기와 빙어 맛 체험, 강촌리조트 스키장, 나미나라공화국(남이섬)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터미널 부근에서 꿩만두국을 맛보았고, 저녁은 춘천시청 부근에서 춘천이 자랑하는 닭갈비를, 이튼날 아침은 강촌으로 나와  달팽이(다슬기)해장국을, 점심은 대룡산막국수집에서 메밀싹을 넣은 메밀막국수와 묵사발, 메밀전병에 동동주 등 춘천의 특선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아보모임 회원들이 전부 주당들이라 어울리다보면 과음하게 된다. 마눌은 치아수술중으로 잘 먹을 수 없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걱정하였으나 그런대로 좋은 여행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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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 - 수많은 낙서들, 젊은시절에 한 낙서, 노년에도 다시한번 와서 추억을 더듬으라고 지우지 않고 보존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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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역 부근 차창으로 바라본 풍경 - 강 왼쪽의 산이 삼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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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리조트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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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리조트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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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 빙어낙시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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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썰매를 끌던 개가 이 곳까지 원정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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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하면서 썰매도 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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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함께하는 빙어 맛이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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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춘천 닭갈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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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리조트에서 바라본 아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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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리조트 스키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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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나라공화국

남이섬에 오니 이곳을 나미나라공화국이라고, 관리사무소를 행정관리청이라고 부르네....

북한강에 떠 있는 반달 모양의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으나, 청평댐이 세워지면서 주위가 물에 잠겨 섬이 되었다.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 역적으로 몰려 28살 젊은나이로 요절한 남이장군의 묘가 이곳에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남이섬이라 부른다고  한다.

 

1970-80년대에는 젊음의 상징인 강변가요제가 열렸고, 80년대에는 영화 '겨울나그네'의 촬영무대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드라마 '겨울연가'로 유명해지면서 추억에 젖은 40~50대 중년층에서부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젊은 연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남이섬은 개인 소유로 대표적 친일파인 민영휘의 증손자 민모씨의 소유라고 한다. 민영휘는 당시 중추원 의장을 지냈고,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서울 휘문고 설립자이기도 하다. 1966년 경춘관광개발로 시작한 남이섬은 민영휘 손자가 1994년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명의를 변경,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증손자가 회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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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으로 희미하게 남이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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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 묘역 ?

태종 이방원의 외손자로 태어나 1457년 17세의 나이에 이미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면서 여러 무직을 역임한 남이는 세조조의 최대의 국난이라 할 수 있는 '이시애 난' 이 일어나자 대장이 되어 구성군 준등과 함께 적들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 공신 1등에 책록되면서 의산군에 봉하여 진다. 그리고 이어서 서북변의 건주위 여진을 토벌하자 우상대장이 되어 만포로부터 파저강을 공격하여 이만주를 참살하는 공으로 이등군공을 받고 공조판서에 임명되며 승승장구하여, 1468년에는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하였으며, 또다시 병조판서에 발탁되어 새로운 주도권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용맹하고 강직한 남이를 남달리 총애하였던 세조가 죽자 '이시애 난' 평정으로 등장한 신세력에 위협을 느낀 신숙주, 한명회등 기존의 원상세력들은 지중추부사로 있던 한계희를 통해 남이의 사람됨이 군사를 장악하기에는 마땅치 않다고 예종에게 아룀으로써 병조판서에서 하루 아침에 해직되어 겸사복장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남이에게 있어 불행의 시작일 뿐, 1년을 겨우 넘긴 예종의 집권기간에 최대옥사를 일으키며 신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숙정작업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남이, 강순의 역모사건'이라는 기록으로 역사책에 남겨지게 되는 사건의 전조였던 셈이다.

이 사건은 병조판서에서 밀려난 남이가 궐내에서 숙직을 하고 있었는데, 밤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혜성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혼잣말 한것을 유자광이 엿듣고 왕에게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하여 국문끝에 능지처참이라는 극형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다.

유자광은 서얼 출신으로 남이와 함께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워 등용된 인물로 모사에 능하고 계략에 뛰어난 사람으로 자신과 함께 공을 세운 남이가 세조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을 시기하고 있다가 마침 남이가 병조판서에서 밀려나자 그를 완전히 제거할 계획을 세워 남이 역모를 무고하여 일어난 일로 역사서에는 정리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유자광은 그 역모사건 후에 익대공신 1등에 봉해지게 된다. 더구나 그는 연산군의 폭정을 도와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힌데 앞장섰던 인물로 우리에게 더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졸지에 역모자로 전락한 남이는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는데, 증인으로 나온 유자광은 "혜성의 출현은 신왕조가 나타날 징조로서 이때를 이용하여 왕이 창덕궁으로 옮기는 시간을 기다려 거사하겠다"라고 거짓으로 진술하여 고문을 이기지 못한 남이는 역모사건을 시인하면서 강순등과 함께 제거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유자광 한사람에 의한 무고사건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먼저 나날이 커지는 신세력들을 편한 마음으로 봐 줄수 없었던 원상세력들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잡고 있었고, 또 무예에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여 세조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던 남이를 시기하고 질투하였던 예종이 훈구대신들의 비판이 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해임한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면서 남이의 역모사건은 남이와 함께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신들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 이속차리기에 바빳던 원상세력과 유약하였던 왕, 그리고 간신 이렇게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북한강 자락에 있는 강원도 춘성군의  '남이섬'. 예전부터 남이장군 무덤이라고 불리는 묘가 한기 있었는데, 정확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고 다만 그가 이섬에 묻혔다는 전설이 담긴 돌무더기가 전하여왔고 그 돌을 함부로 가져가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인근 주민들사이에는 입으로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는 남이섬에 남이장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이장군의 무덤은 화성군 비봉면 남전2리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부인과 나란히 묻혀 쌍분을 이루고 있는데, 1971년에 묘역 정화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무관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는데, 석인상은 장군석이 아니라 문인석으로 마련된점이 특이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간악한 간신배로 자리매김한 유자광이 비판되면서 남이의 역모사건은 오로지 유자광 한사람의 무고에 의한 억울한 죽음으로 사람들은 결론을 내렸고, 드디어 1818년(순조18)에는 그의 후손인 우의정 남공철의 주청으로 강순과 함께 관작이 복 되었다. 또 서원이 난립하던 때에는 창녕의 구봉서원과 서울 용산의 용문사 및 서울 성동의 충민사에 배향되어 충무라는 시호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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